Q. 루나 님의 손글씨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A. 제가 언제나 또박또박하게 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제가 생업에 종사하면서, 미팅하면서 필기를 하거나 그럴 때는 저도 정말 개발새발 쓰거든요?
그런데 제가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서 하루를 복기하면서 다이어리를 쓴다거나 만화를 그린다거나,
이럴 때, 다시 저의 본연의 글씨체로 돌아와서, 열과 성을 다한 또박또박한 글씨가 나와요.
그 차이를 제가 생각해보면 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될 순간에는 저도 그 글씨를 쓰지 않고,
좀 더 제 내밀하고 본연의 이야기를 토해낼 때, 그때 제 글씨가 그 자리에서 제일 빛을 발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Q. 다재다능 N잡러 루나, N개의 정체성을 소개해주세요!
A. 제 첫 번째 직업은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를 한 것이었고요.
들어간 지 3년째 되던 해에 제가 홈페이지
〈루나파크〉를 열고 만화가로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만화가로 활동을 하면서 각종 굿즈를 내거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할 수 있었고,
글 쓰는 사람이다 보니까 에세이스트로 책 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가장 마지막으로는 영광스럽게도 시인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습니다.
정말 직업이 많죠? 그러다 보니까 어딘가에 가서 멋있게 얘기할 때는
“예술가예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제가 순수 예술을 한다기보다 아이디어를 발상하고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요즘 생각하는 저의 정의는 ‘창의노동자’입니다.
요즘은 저를 그런 말로 많이 규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요즘 가장 몰입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A. 제가 만화가로 활동한 지도 2006년에 시작을 했으니까,
벌써 15년이 지난 거예요.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저한테 지면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제 SNS를 통해서라도,
“내가 뭔가 제2의 만화가로서의 인생을 찾은 것처럼
열성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없을까?” 해서
새로운 연재 만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요즘 제일 흥미롭게 하고 있는 일은 그 일이에요.
Q. 만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작업, 〈전세역전〉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비슷한 인생을 15년째 얘기해온 사람으로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부분을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수년 전에 전세 사기당한 일이 생각나더군요!
요즘 부동산 또, 모든 분들의 초미의 관심사 아닙니까!
그래서 부동산 정보를 살짝 곁들인 제 전세 사기 체험담을
루나의 〈전세역전〉*이라는 만화로 그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시에는 한창 연재 중이었으나 현재에는 완결되어 전체 에피소드를 감상할 수 있다.
Q. 정보량이 엄청난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비법, 공개해주세요!
A. 제 글씨가 너무 또박또박하다 보니까 이미 폰트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좀 계셨는데 실제로는 제가 한 땀 한 땀 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텍스트 양이 많아지는 만화 같은 경우에는 좀 부담이 되는 감이 있었어요.
근데 이 만화 같은 경우에는 제가 애초에
정보를 많이 담고 싶은 만화였는데 저의 글씨를 재연한 폰트가 생겨서,
작업 시간이 더 빨라지고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글씨에 썼던 노동을 그림과 연출에 투입할 수 있게 되어서
제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퀄리티가 예전에 그렸던 것들보다는
좀 더 올라갔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오랜 시간 손글씨 작업만을 선호해온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 만화의 장르가 생활 만화이자 일상툰 또는
일기툰이라고들 많이 부르시는 거잖아요. 에세이툰이라고도 하시고.
그 말인즉슨 제 일상과 제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저의 만화인데,
그러다 보니까 그 누구의 폰트나 기성 어떤 폰트를 적용한다고 했을 때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이거 내 얘긴데, 내 생각이고 내 대사인데” 다른 사람이 만든 글씨체를 쓴다는 게,
어색하다 보니까 처음부터 시종일관 제 손글씨를 유지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오래 만화를 연재하다 보니까 저의 글씨체 자체가 하나의 시그니처가 돼서,
글씨체만으로도 제 작품인 걸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많으시다 보니까
계속 손글씨를 유지해 왔던 것 같아요.
Q. 루나파크또박체 폰트 제작, 이렇게 결심했다!
A. 추리소설에도 보면 지문이나 목소리나 요즘 들어 발걸음의 모양새?
이런 게 그 사람을 드러내는 중요한 아이덴티티잖아요.
근데 필체가 또 그만한 아이덴티티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디지털 세상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저의 아이덴티티를 부호화해서 남긴다는,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하자면 제 글씨는 제가 늙어도,
세상이 변해도 영원히 살아남아서 디지털 세상에서 호흡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이건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Q. 폰트 완성 소감이 궁금해요!
A. 폰트라는 걸 처음에 딱 손에 넣고 나서 제 느낌은,
평생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샤프라는 이렇게 좋은 게 있었구나를 깨달은 그런 기분이 딱 들더라고요.
연필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그 사람한테는, 연필을 놓을 생각은 없어요.
연필만의 또 매력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샤프의 효율성과 능률을 내가 외면할 필요가 뭐가 있지?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요즘엔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루나에게 루나파크또박체는 OO이다!”
A.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제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쓰던 제 소중한
구슬 같은 거를 자동으로 계속 만들어주는 거예요.
심지어 닳지도 않고 영원히 쓸 수 있는.
그래서 말하자면 화수분 같은 표현을 많이 하죠?
주머니에서 반짝반짝거리는 구슬이 끝도 없이 나오는 그런 기분입니다.
제게 폰트는.
지금 본 영감과 관련된